광개토대왕이 암살당했다든지 귀족간의 권력 투쟁이 있었다든지하는 의견에 저는 반대합니다. 장수왕의 정책이 광개토대왕과 달랐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물론, 그 분의 붕어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황에 따라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요, 태왕께서는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느라 말 위에서 일생을 바치다보니 과로사 내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사하신 걸로 추측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태왕은 나라의 영웅이었기 때문에 온 백성들의 애도 속에 돌아가셨을 것이고 당시에는 나라 전체가 백제와 후연이라는 강적을 맞아 단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왕권에 반기를 들 무리가 나타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장수왕은 이름(거련) 그대로 아버지인 태왕의 뜻을 이어받아 그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고구려 중심의 천하를 이룩합니다. 고구려인의 목표는 남의 나라를 지속적으로 침탈하고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후연 멸망 이후 장수왕이 왕 위에 오르자 나라가 안정되면서 바깥에 무서운 적이 없어지니까 권력 투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장수왕은 평양 천도를 단행하고 5세기 후반에는 대규모 숙청을 통해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들을 제거하는 것이죠.
사실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은 이웃 국가들을 침탈하여 고통을 주었으니 이웃 나라 백성들에게는 Devil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개토태왕은 그런 정복 군주의 반열에 놓고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태왕은 외치만 잘 하여 강한 나라만 만들고 단순히 땅따먹기를 잘 한 왕이 아니라 내치를 잘 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평안하게 만들어준 성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이지만 차이점은 세종대왕은 약소국 군주의 한계를 지닌 변방 소국의 성군이었던 반면에 태왕은 우리 나라를 세상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시킨 성군이었습니다. 고구려인들에게 태왕은 그들의 자존심이고 자랑이었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훗날 국력이 5세기보다는 훨씬 약화된 7세기초에도 통일 중국 수나라를 대파하여 멸망시켰습니다. 단지, 국제 정세 때문에 운좋게 중심 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시절에 중국이 통일되어 고구려와 한 판 붙었다면 수 양제 이상으로 참패를 당하지 않았을까요?)
첫댓글일리 있는 글입니다..태왕께서는 외치와내치를 모두 살피신 성군중의 성군..타 민족에게도 아 민족과같이 대해주신 분인데...그런 성군이 암살을 당했다는것은 좀 이상한 감이 있군요.제 짧은 소견으로는성군의 죽음을 암살로 위장하여 국력을 일치 단결시키는 한가지 방법으로 택했던거 같습니다.
첫댓글 일리 있는 글입니다..태왕께서는 외치와내치를 모두 살피신 성군중의 성군..타 민족에게도 아 민족과같이 대해주신 분인데...그런 성군이 암살을 당했다는것은 좀 이상한 감이 있군요.제 짧은 소견으로는성군의 죽음을 암살로 위장하여 국력을 일치 단결시키는 한가지 방법으로 택했던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에 대해서는 김용만선생님의 책에도 있듯이, 단순히 땅따먹기만 하지는 않았으며, 백성들의 삶을 평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수왕은 이름이 거련, 즉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그대로 계승한 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