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이 정말 ADHD일까?
시장과 제도가 만들어낸 질환
캐시 후프먼은 『강아지는 모두 ADHD래요!』에서 ADHD(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아동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믿어주고, 자존감을 세워주며,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삶의 여정에서 함께할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ADHD 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 게으르다거나, 참을성이 없고 이상하다는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왔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법학자인 조엘 바칸이 쓴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은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여줍니다. 지금의 의료와 교육 시장은 기업들이 구축한 거대한 ‘어린이 시장’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소아정신과가 급속히 성장한 시기는 ADHD 진단 증가 시기와 맞물립니다. 1980년대 이후 산학협력을 명분으로 의학연구에 기업 투자가 허용되면서 의학계와 제약업계는 긴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루기 힘든 아이들에게 손쉽게 ‘ADHD’라는 진단을 내리고, 환경적 돌봄(다양한 지원) 대신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약물 처방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사회학자 피터 콘래드(2018)가 지적하듯, 최근 성인 ADHD 진단까지 확대되면서 기존 제약 시장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졌습니다.
불안과 우울, 과잉행동 같은 증상은 어떤 환경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가에 따라 ‘병’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과잉행동장애가 ‘부모와 의사의 합작품’(한겨레, 2013.4.3.)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소아정신과 의원들은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약물치료로 부모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명이 좁은 교실에서 온종일 함께 공부하고 엄격한 통제에 잘 따라야 하는 획일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는 다양한 아이의 특성을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다수가 정의하는 ‘정상’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하여 문제를 삼는 구조 속에서는, 아이의 역동적인 ‘개성’이 손쉽게 ‘장애’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에디슨 유전자와 사냥꾼 기질은 결핍이 아닌 능력
ADHD를 ‘에디슨 유전자’나 ‘사냥꾼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톰 하트만의 『산만한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에 따르면, ADHD의 산만한 모습은 사실 주변을 폭넓게 ‘훑어보는 특성(scanning)’입니다. 이 아이들은 오랜 시간 선생님 수업에만 집중하는 대신, 창밖의 구름이나 친구들의 움직임처럼 자기 둘레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렇게 끝없이 주변을 살피는 행위가 교실에서는 산만함이 되겠지만, 원시 인류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상황 파악 능력’이었습니다. 또한,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는 특성은 숲속과 밀림에서 찰나의 선택으로 살아남는 힘이었습니다. 지금도 온라인 게임이나 전투기 조종, 응급실 근무처럼 복합적인 자극에 대처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유용한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는 유전적 정신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땅을 찾아다니며 모험하던 용기 있는 선조들의 후손일지 모릅니다.
영화배우 하정우 역시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자신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관심의 분산이나 병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다양한 관심을 두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산만한 능력 덕분에 그는 한 번의 생에 배우, 감독, 제작자, 화가라는 여러 직업을 동시에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이 아이들은 창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활동적이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아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능력(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와 환경의 부조화, 맥락을 읽는 관점의 필요
이 아이들이 결핍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해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와 교육 체계가 그 특별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사회사업가라면 아이의 특별한 행동 자체만 보지 않습니다. 그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환경과 만난 상황’을 동시에 살펴봅니다.
『이 아이들이 정말 ADHD일까?』의 저자 김경림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혼 직후, 초등학생 아들 담임 교사로부터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며 병원 검사를 권유받았습니다. 당황한 저자는 정말 병원에 갈 뻔했지만, 이내 깨달았습니다. 최근 부모의 이혼으로 ‘나도 버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던 아이의 환경적 맥락을 발견한 겁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둘레 어른들이 아이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믿음을 주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후 아이를 이해해 주는 환경으로 학교를 옮기자, 아이의 행동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빨간약』(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속 교사의 일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시간에 자기 생각과 다르면 벌떡 일어나 의견을 쏟아내는 아이를 두고, 방학 동안 어디선가 ADHD 연수를 받고 온 동료 교사는 조언했습니다. 그 아이는 심각한 ADHD 증세를 보이니 빨리 병원 치료를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손쉬운 병원행 대신, 아이 행동 이면에 숨겨진 “엄마, 아빠 날 좀 사랑해 주세요. 나에게 관심 좀 주세요.”라는 간절한 마음을 읽었습니다.
실제 사회사업 현장에서 또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거나 일상생활이 심각하게 어려운 경우, 증상을 완화하는 의료적 지원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행동 뒤에 숨겨진 아이의 마음과 환경적 맥락을 돌아보지 않은 채, 약물 치료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만 아이들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경계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기껏해야 개성 넘치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죽여 획일적인 현실에 맞추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업적 대안, 자연 속에서 어울려 놀게 하기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들을 억지로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교육 방식을 바꾸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손쉽게 아이들만 몰아세워 왔을지 모릅니다.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약물치료를 받았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약물을 받지 않았던 이들과 비교해 사회적 적응 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는 일시적인 약물 통제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사업가들은 현장에서 어떤 환경적 대안을 만들어야 할까 궁리합니다. 사회사업가다운 실천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친구와 놀이’, 이것만 한 실천이 없습니다. 지나치게 단순화 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복지사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되도록 자연 속에서 어울려 노는 일’ 으뜸입니다. ‘놀이’라는 적극적 복지사업이 이런저런 아이들의 어려움을 줄어들게 하거나, 어려움이 있어도 살아가게 합니다.
놀이와 운동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시작한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긍심을 심어줍니다. 꾸준히 운동을 한 집단이 심한 우울증 상태에서 현저히 호전되었다는 연구 결과처럼, 몸을 사용해 웃고 떠들며 노는 행위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이들의 유전적 욕구와 두뇌의 활력을 모두 충족시켜 줍니다. 특히 교육복지사나 학교사회복지사, 지역아동센터나 키움센터의 사회복지사라면 더욱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려 놀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설계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사회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만큼 그 사회의 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치료가 시급한 환자로 몰아가지 맙시다. 그 아이들이 가진 특별함을 인정하고 품어줄 수 있는 환경 변화를 만들어냅시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사업가들이 궁리하며 펼쳐가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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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콘래드. (2018).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후마니타스.
캐시 후프먼. (2013) 『강아지는 모두 ADHD래요!』. 고슴도치.
톰 하트만. (2009). 『산만한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미래의 창.
하정우. (2018).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김경림. (2018). 『이 아이들이 정말 ADHD일까?』. 민들레.
이지성. (2017). 『빨간약』(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성안당.
조엘 바칸. (2013).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내 아이를 위협하는 나쁜 기업에 관한 보고서). 알에이치코리아.
첫댓글 1988년 개봉한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주제곡
노래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알약이나 물약이 소용 있나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을 주세요
(⋯) 귀찮다고 야단치면 그만인가요 바쁘다고 돌아서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건대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초콜릿과 놀이터가 소용 있나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