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안제 영초 5년(111)에 부여 왕이 처음으로 보병과 기병 7,8천을 거느리고 낙랑을 침략해서 백성들을 살상시켰다."
계속 눈팅 중에 있었는데, 왜 이 기록이 토론 중에 나오지 않는지 의문이군요.^^;
개인적으로 낙랑군 위치는 현 통설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꽤 예전부터 저 기록이 계속 의문으로 남아 있는지라 몇 가지 가능성을 거론해보겠습니다.^^
1. 부여가 고구려를 통과해서 평안도의 낙랑을 공격?
- 부여가 자국 보다 국력이 강했던 태조대왕이 다스리던 고구려를 통과해서 낙랑을 침략했다는 것은...;;
2. 낙랑은 대륙에?
- 그랬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이 기록 말고 대부분의 낙랑 기록은 한반도쪽 국가들과 연관되어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더불어 낙랑의 유물들도 한반도에 있습니다.
3. 낙랑은 현도의 오기?
- 부여는 현도군과 교섭과 전쟁 등을 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낙랑을 현도로 바꿔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긴 한데, 이 해석의 약점은 사료를 이미 내려놓은 결론에 맞춰서 자의적으로 바꿔 해석했다는 것이고, 편찬자가 낙랑과 현도를 헷갈릴 만한 어떤 개연성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입니다.
4. 낙랑은 한반도와 대륙 두 곳에 존재?
- 딱히 깊게 생각은 해보지 않았네요.^^;
짧은 생각 끄적여 봤는데, 고견들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예전에 고대사토론방 3024번 글 쓰면서 저도 한번 이용했던 기록이로군요. :-) 그 때 달아주신 덧글 덕분에 자료를 뒤적여보고, 두막루와 달말루에 대한 제 잘못된 생각 하나를 폐기할 수 있었지요. 그 때 제가 제기한 주장, 즉 부여세력이 현토에 이르기 전에 낙랑으로 이동하여 일시 머물렀다는 것이 제기하신 기록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올린 이후로 생각은 그 때 그대로인데, 자료는 몇 가지 더 보태어진 것들이 있습니다. 가까운 시기, 백제왕실에 대한 글에서 함께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 떄 추가적으로 자료 보완 이뤄지면 다시 논의주신다 하셨는데, 기대되는군요.^^
당시 고구려가 예맥을 동원해 현도를 침략했는데,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을 본다면 고구려가 부여의 군사를 동원해 낙랑을 동시에 공격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큰 문제는 없을것 같은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 기록에 의하면 부여왕의 친정이라서 주체가 부여일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 관련 2차 낙랑의 무덤형태나 부장품 성격및 낙랑 위치 관련 내용을 올리려다 아래 풍납토성 초축에 이야기가 있어 이부분을 먼저 짚어 글을 올리고- 시간이 될지..- 차후로 해야 겠네요. 저 부여공격과 연승하여 간단한 이야기로 저는 후한서 순리열전의 <왕경> 관련 기록을 추천합니다. 예전에 여기서도 한번 올려졌던데.. 이 왕경이라는 인물은 낙랑 지배성격에 대한 고조선계와 이주 토착한족계, 그리고 신진도래한족계간의 관계성의 중요한 사항에 대해 언급할 때 한번씩 나오는 인물이며 내용입니다. 근데 정착 이 글에 있는 낙랑 위치의 매우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건지 언급없이 넘어 가는 경우가 많더군요.
잠시 언급하면 후한 교체기 기원후 30여년경에 광무제가 낙랑의 토인 세력의 반란으로 군대를 파견하는데 -삼국사기도 언급되어 있죠 연대 오류- 왕경의 아버지 왕굉이 양읍등과 더불어 반란 토인 왕조를 죽이고 왕준군대를 맞이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왕경의 8대조가 BC178년 즉 한사군 설치되기 70년전에 동쪽 낙랑산중으로 숨어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즉 이전부터 낙랑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기원후 30년 반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한나라 군대가 이른곳이 바로 <요동>입니다. 그리고 왕굉이 왕조를 죽이고 맞이 하는 곳 역시 <요동>이구요.
근데 이 중요한 기록은 뺴버리고 미천왕이 313년에 멸망시킬때까지 즉 420여년간을 한반도 평양에 있다 이후 선비족 모용외 시기에 요서로 밀려나서 낙랑군이 교군형태로 존재했다는 말만을 합니다.한반도 북부에도 이런 최리 낙랑국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를 옥저로 동해로 보고 여러 거수국 형태의 군의 현으로 여전히 평양 일대에 낙랑군적 성격의 지배존속의 학설로도 변형되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이후 좀더 이곳 일대의 유물 ,유적의 성격 규명을 통해 풀어 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조선이 망하고 설치된 한사군의 명칭은 고조선 고유의 지명에서 따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한서 왕경전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과연 뭘 뜻하는걸까요? 왕경의 조상이 낙랑땅에 숨어들었다고 한다면 고조선으로 도망쳤다는 뜻일까요?
음... 고민(?)하시는 것 같아서....[역시 결론만 말씀드리면.../죄송/...] 답은 .../2. 낙랑은 대륙에/...입니다.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였으며, 그 증거는 바로 ../대부분의 낙랑 기록은 한반도쪽 국가들과 연관되어있다/...는 것과 .../낙랑의 유물들도 한반도에 있습니다./...가 될 것입니다. '약점'이 아니라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즉, .../대륙에 있었던 낙랑이 왜 한반도에 있다고 기록되고 그 유물이 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지???/... 이유를 알게 되면 그것들이 모두 바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저는 4번설을 지지합니다 제가 어느책에서 본것이지만 한사군은 요동반도에 있으며 낙랑국은 한나라에 내부한뒤 살수이남이 한나라에 넘어간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즉 313년 낙랑군을 축출한것은 평양지역도 있겠지만 요동지역도 축출한것이 될수도 있겠지요. 읽어본 책은 왜곡된 역사(잃어버린나라 고조선),잃어버린 나라 낙랑 입니다 비록 대륙사관으로 몰릴수도 있지만 읽으면 이 내용이 해결되는데 도움이 될듯 합니다.